내일이면 늦을 ....
오늘 돌봄이 필요한 영혼들을 위하여 !


성령께서 심어 주신 특별한 은총

메리 포터는 만인에 대한 하느님의 열절한 사랑의 신비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어 보여줄 수도회를 설립하도록 성령께 부르심을 받고 또 힘을 받았다고 믿었다.

메리 포터 영성의 특징을 이루는 것은
성령께 받은 네 가지 특은이다.
첫째 , 임종하는 이들을 위한 기도생활에 헌신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
둘째 , 성모님의 모성에 일치하는 생활
셋째 , 갈바리 산상의 예수님의 성혈을 통한 하느님 자비를 간구
넷째 ,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이 소명을 성취

메리 포터가 받은 특별한 은총은 "갈바리의 십자가 아래에 서 계시는 성모 성심"과 하나되어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고, 임종자들을 성모님처럼 돌보아 주며, 함께 하지 못하는 임종의 자리에는 기도로서 지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임종의 순간"이 영혼의 구원을 좌우하는 만큼 사람들이 임종을 잘 맞이하도록 돕는 일이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일임을 깊이 새기는 것이다.


태 중에서 성모님께 봉헌된 메리 포터

메리는 1847년 11월 22일 윌리암 N포터와 메리 앤 마틴사이에서 4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영국 중산층 출신으로 명목상은 신교도였지만 실제로는 종교를 믿지 않았다.
어머니 메리 앤 마틴은 성공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나 1845년 중반에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새롭게 찾은 가톨릭 신앙에는 매우 열성적이었지만 결혼 생활은 그리 평탄하지 못하였다.
그녀는 메리를 임신하고 결핵을 심하게 앓게 되어 뱃속의 아이를 성모님께 봉헌하였다.

메리가 태어나고 1849년 초에 가정은 깨어졌다. 아버지가 집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버지의 사랑을 전혀 모르는 아이로 성장하였지만 아주 발랄하고 명랑하였으며 가족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그러나 메리는 아기 때부터 매우 병약하여 평생을 폐결핵과 선천적 심장 장애, 만성 기관지염, 유방암, 류마티스 관절염 등으로 고생을 하였다.


당신의 배우자는 오직 한 분, 주님뿐이십니다.

메리가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 오빠의 친구인 갓 프리와 약혼을 하였다. 메리와 갓 프리는 결혼을 특별한 은총, 권리 의무 그리고 어려움을 지닌 일생의 한 과정으로 보지 않고 자신들이 더욱 성화 되기를 갈망하였으며 결혼을 하면 현재 상태보다 더욱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며 교화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막연하고 비현실적인 대화만을 나누었다.

그러나 메리는 이런 상태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다. 진정 기도와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녀는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메리는 사우스워크에 가서 그랜트 주교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고 그랜트 주교는 이렇게 말하였다. ' 당신의 배우자는 오직 한 분, 주님뿐입니다. 당신이 일생을 세상에서 보내든지 아니면 수녀원에서 보내든지 말입니다.'


'자비의 수녀회' 청원자가 되다.

메리는 가슴이 아팠지만 갓프리와 파혼을 하고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1868년 12월 8일 '자비의 수녀회' 청원자가 되었다.

서원을 앞두고 그녀의 성소 문제가 거론되었을 때 메리는 정말로 수도 생활을 하라는 성소를 받기는 하였으나 자비의 수녀회 성소는 아니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래서 그녀는 켄싱턴에 있는 '승천 수녀회'로 가기로 하였다.

그러나 수도생활의 육체적 긴장과 인내하고자 하는 메리의 용기 있는 노력이 그녀의 건강을 급속도로 악화시켰다. 그리하여 켄싱턴으로 가기 전에 기운을 회복하기 위해 잠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 졌다. 어떤 면에서 그녀가 자비의 수녀회를 떠나야 한다는 것은 '커다란 시련'이었다.


성모 마리아께 대한 진정한 신심

1870년 6월 메리는 집으로 돌아와 병상에 있으면서 고독과 오해 속에서 수개월을 보냈다.
그녀는 그 가운데에서 주님의 십자가를 발견하였으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자 하는 자신의 목표를 향해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다.

우연히 그녀는 페이버 신부가 번역한 성 그리뇽 드 몽포르의 "성모 마리아께 대한 진정한 신심"에 관한 논문을 접하게 되었다. 그녀는 저자의 권유에 따라 33일 동안 준비를 하고 1872년 12월, 그녀 자신과 전 생애 그리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께 바치는 엄숙한 서약을 하였다.

교황 비오 10세께서 성 드 몽포르 성인의 시성식에서 말씀하셨듯이 그의 마리아 신심의 기초는 마리아의 중재 역할을 믿으며 성모님의 모범을 따르고자 모든 노력을 다하고 예수님께 깊은 사랑을 품는 것이다. 메리 는 1876년 9월, 영국인으로서는 첫 번째로 성 드 몽포르 논문에 관한 주해서 "마리아의 길"이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을 만큼 그의 영성은 메리의 영성 생활의 기초가 되었다.


'내일이면 너무 늦게 될' 영혼들을 ...

1871년 말경, 메리의 마음에 죽어 가는 이들의 영원한 구원에 대한 염려가 생겼으며, 위대한 영적 결실은 임종시, 육체가 죽어 없어지기 전에 얻어 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당시에 그녀는 사람들이 결코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던 병을 앓고 난 뒤 서서히 건강을 되찾고 있었다.

위기의 기간 동안 그녀가 체험했던 고독과 두려움 그리고 기도조차 할 수 없었던 무력함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그녀로 하여금 이러한 생각을 갖게 하였다. 즉 교회 안에 수녀의 모임이 있어서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영적인 도움과 가능하면 육체적 도움까지도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그냥 지나쳐 버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녀는 너무나 병약하여 그러한 수녀회에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조차 어리석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수개월 후 1872년 말경, 교구 선교모임에 참석했을 때 죽어 가는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충동이 너무도 강하게 그녀 마음속에 일어났지만 램버트 신부는 그녀가 켄싱턴 수녀원 이외의 다른 곳에는 결코 들어 갈 수 없다고 결정했다.

1874년 10월 4일 로사리오 축일에 메리는 '죽어 가는 이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는데 심취하였다. 그녀는 지도 신부의 충고를 구하였는데 그는 '죽어 가는 죄인들의 영혼을 마지막 순간까지 영원한 벌로부터 구하고자'하는 그녀의 열성에 다소 놀라워하면서도 특별한 자비를 구하는 일은 삼가라고 권하였다. 하지만 메리는 '내일이면 너무 늦게 될' 영혼들을 그냥 내 버려 두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내가 부름 받은 금요일

메리가 '내가 부름 받은 금요일'이라고 말하는 11월 6일 그녀는 기도 중에 이런 소리가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내가 너를 뽑은 것은 네가 가서 영원히 썩지 않을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다."
메리는 마음속으로부터 "왜 저를..." 이란 말이 떠올랐을 때 "세상의 약한 자들을 내가 택하였노라"
는 응답이 들려왔고 메리는 곧 "주님께서 당신 종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기 바랍니다."라고 고백하였다.
다음날 아침 영적인 주제에 대한 소책자를 읽던 중에 그녀는 "임종하는 이들에 대한 성모 마리아의 돌보심" 이란 문구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그 순간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성모 마리아를 향한 사랑이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내 안에서 솟구쳤다. 나는 기도를 드렸고 기도 중에 성모님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나에게 들려왔다. "네가 이 일을 하는 것이 나의 뜻이다."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


메리 포터의 특수 사명

메리는 지상에서 이루어야 할 자신의 특수 사명에 대해서 몬시뇰 버츄에게 이렇게 설명하였다.
" 저는 임종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제게 주어진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할 수 없는 수녀회라면 저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어 가는 이들을 마지막 순간에 구원하는 일에 헌신할 수녀회를 세움으로써 그분의 자비를 드러내고자 하십니다."

성모 성심을 찬미하라

1874년 12월 8일, 메리는 영성체 후 감사기도를 드릴 때에 임종하는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수녀회에 대한 계획이 더욱 분명해졌다. "성모 성심을 찬미하라"는 메시지는 그녀를 매우 감동시켰다 후에 메리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 임종하는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제가 얼마나 애써 기도하였는지를 알고 계십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타락한 이 세상에서 벗어나 그분 앞에서 성모 성심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성모 성심께서는 당신의 자녀, 특히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임종하는 이들을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 체험은 메리의 영적 순례의 이정표가 되었다. 왜냐하면 메리는 임종하는 이들을 위한 마리아의 돌보심이, 외적이고 멀리 있는 관심이 아니라 끊임없고 강렬한 진정한 모성애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메리는 자신의 사명이 단순히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임종하는 이들을 향한 성모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일이며, 성모님과 이 땅 위에 재현되는 그분의 숭고한 덕과의 만남을 요구하는 일로 여겼다.


그리스도의 성혈을 찬미

그해 12월, 어느 금요일 오후 성체 조배를 하던 중, 메리는 그리스도의 성혈을 찬미해야 하는 의무를 깨닫게 되었다. 그녀는 말년에 이렇게 말하였다. " 주님께서는 갈바리에서의 성모님의 고통과 주님의 성혈을 제게 일깨워 주심으로써 죽어 가는 이들이게 헌신하는 일에 대한 당신의 애정을 보여주지 않으셨습니까? 고통받는 성모 성심과 성혈이 구원을 청하는 영혼들을 위하여 무슨 일인들 안 하시겠습니까? "


성령을 찬미

1875년 2월 20일 토요일, 메리는 다시 한 번 성체 앞에서 생명과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찬미하고 공경할 마음이 생겼다. 이는 그녀의 기도의 목적인 죽어 가는 죄인들이 회개하는 것은 오로지 성령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하느님의 은총을 갈망하고 받아들이게 할 때만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갈바리를 그 정신과 모델로 하는 새로운 수녀회

이렇게 메리는 앞으로의 수녀회의 설립에 대한 윤곽이 차츰 뚜렷해 진 것에 대해 매우 기뻐하였다. 1876년 7월 18일 성 가밀로 축일에 메리는 교황 비오 4세에게 그녀가 시작할 일의 정신과 목표에 대해 이렇게 썼다.
" 저는 하느님께서, 갈바리를 그 정신과 모델로 하는 새로운 수녀회가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는 당신의 뜻을 제게 보여주셨다고 확신합니다.

1874년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축일에 주님께서는 " 성모성심을 찬미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으며, 그 말씀이 제 영혼 안에 한 사업을 열매맺게 하였습니다. 저는 지금 제 자신의 마음보다는 고통을 품은 성모 성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갈바리 산상에서 우리의 어머니가 되셨고 우리를 위해 고통 받으셨으며 성혈의 근원이신 성모 성심을 찬미합니다....

수녀회의 멤버들은 성모 성심 안에 한 몸이 될 것이며 하느님 앞에 성모 성심을 내어놓고 성모님의 자녀들을 위해 이 타락한 세상에서 간구할 것입니다.
특히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즉 매일 죽어 가는 8만 명의 교회 식구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성모님 자신이 갈바리 산상에서 예수님이 흘리신 성혈과 그의 죽음 곁에서 간구 하셨듯이 말입니다. 바로 이러한 성모님의 일을 위하여 저는 교황님의 허락과 축복을 간청하는 바입니다. "

1877년 1월 노팅엄 교구의 백쇼 주교가 자신의 교구 내에 임종하는 이들에게 헌신하는 수녀회의 설립 가능성을 타진하여 왔고 메리는 주교와 면담을 가졌으며 메리의 솔직성과 영성적인 목표가 주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해 3월 16일 메리가 두 명의 동료들에게 '이제 당신들을 맞을 준비가 되었어요.' 라고 편지를 쓰게 되었을 때 그녀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이렇게 임종자들에게 봉헌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는 1877년 7월 2일, 영국 노팀엄 교구의 하이슨 그린 마을에 사용되지 않는 양말공장에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아! 기도하라

하느님 안에서의 완전한 평온함과 굽히지 않는 신념 그리고 순명에 대한 훌륭한 정신이야말로 메리의 힘이 되었다.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는 그녀의 영적인 산고의 고통 속에서 탄생한 그녀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수녀회를 설립하고 난 후에도 나이 어린 수녀회 내부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시련과 자신의 육체적 고통을 통해 오히려 수녀회의 필요성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1883년 그녀가 체험한 것을 생생하게 이렇게 글로 묘사하고 있다.

"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내가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내가 겪고 있던 고통을 알지 못했다.
어떻게 그것을 묘사해야 할까?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이 죽음의 고통이다. 이제 상상해 보라. 몸 전체에 거센 파동이 밀어닥쳐 온 몸을 경련 시키고 조금씩 생명을 거두어 간다는 것을. 그것은 진공 상태이다. 고통받는 자는 숨이 막혀 할딱거린다.

희미하게 생명이 돌아오려고 하는 듯 싶으면 또 하나의 거대한 파동이 다시 밀려와 불가항력의 거센 힘으로 더욱 더 생명을 빼앗아간다. 이 맹렬한 파동은 몇 번이고 다시 온다. 아! 기도하라, 고통받는 이는 잠잠해질 것이며 이제 너무 지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표현할 수도 없을 것이다. 믿음의 자녀들은 그들의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영혼이 이러한 파동을 느낀다고 상상해 보라,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하느님, 그것을 피하게 해주소서! 성모 성심의 기도에 힘을 주소서. 예수여! .. "


죽음은 끝이 아니라...

그렇지만 죽음이 생의 마지막이 아니기에 우리는 주님께 기도할 수 있다. 죽음은 또 다른 생명으로 들어가는 출발점이다. 메리는 딸을 잃고 슬퍼하는 오빠 내외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 참으로 언니와 오빠는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곳으로 가버린 플로리다와 평화스런 천국에서 만날 때까지 슬퍼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세상에 내놓은 그 생명 즉, 당신들의 분신이 영원히 영생과 결합되었으므로 전에 없이 언니 오빠의 영혼은 이제 하느님과 이어진 것입니다.

그녀는 하느님께로부터 나왔으며 이제 그분께 갔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합시다."


그분은 하느님을 사랑한 것입니다.

1913년 4월 9일 메리가 임종한 후 몇 시간 뒤에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업적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때 한 사제는 그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 메리 포터가 한 일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을 사랑한 것입니다. "

나의 심장을 사랑의 표지로 삼았으면...

메리 포터가 남긴 문서 중 하나에서 자신이 죽은 뒤에 가능하다면 자신의 심장을 떼어내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모든 새 분원에 조금씩 나누어줌으로서 " 나의 심장을 각 집에 두고서 모두를 사랑하는 표지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언급을 했다.

그리고 그 심장이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가 항상 노력하는 외적 화합과 정신적 일체감의 상징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따라 4월 11일 금요일 , 네 명의 자매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웰스포드 박사가 사바투치 박사의 도움을 받아 이 일을 시작했다.


가경자로 선언되다.

요한 바오로2세 교황께서 1988년 메리 포터의 시성 절차의 첫 단계로서 가경자로 선언함으로서 교회가 메리 포터의 거룩함을 승인한 것이 된다.

"당신은 외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항상 당신 곁에 있겠습니다."

"성모님께서 당신 사도들로 뽑은 작은 자매들이여, 앞으로 매진하십시오. 여러분 안에 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 성모승천 관구인 한국의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는 호주 성령 관구를 통해 1963년 11월에 강릉 갈바리 언덕에 작은 씨앗으로 심겨졌다.

현재까지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동안 많은 이들의 임종에 조용히 함께 하였다. 메리 포터라는 한 여인을 통해 우리는 가장 위급한 처지에 있는 영혼들을 향한 강인한 모성애를 발견한다.

이 일을 하는 우리들 안에서도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고 싶은 모성애를 발견한다. 그래서 우리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은 임종의 자리인 갈바리가 가장 고통스럽지만 가장 행복한 곳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받은 소명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모현 (母峴, 갈바리 언덕의 어머니 )가정 방문 호스피스에서는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여행길에 있는 이들의 동반자가 되는 우리의 소명을 새롭게 다지면서 올 한해의 비전을 이렇게 만들었다. " 당신은 외롭지 않습니다. 우리가 항상 당신 곁에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