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11.23 한국 천주 교회 춘천 교구장 구 토마 주교님의 초청으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호주관구 호주수녀 2명 (Sr. Mary Evangelita(Margaret) Herdigan & Sr. Mary christine Astell)이 한국에 도착하여 강릉 갈바리 의원 건축을 시작하였다.
1964. 9. 1
호주수녀 2명 (Sr. Mary Teresita de Dassel & Sr. Mary Mark( Cecilia) Mulchare)이 한국 선교에 동참하여 강릉에서 합류하였다.
1964. 9.14
갈바리 의원 건물이 완공되어 수녀원 축성 및 외국신부님 (Fr. James Duggan S. S. C.)께서 원목 신부로 상주하게 되었다.
1965. 3.15
호주 자원봉사 의사 1명( Dr. Paul Maher)과 호주 수녀 4명 ( 간호사, 방사선과 기사, 검사실 기사, 약사) 및 직원 22명으로 갈바리 의원이 개원되어 수도회의 영성인 갈바리 산상의 예수님 십자가 발치 아래 서계시는 성모 마리아의 모성에 일치된 정신으로 임종자들의 영적 구원을 위한 주님의 치유 현존을 증거하기 위하여 내·외과 외래 진료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강릉에는 병원이 없었던 시기였으므로 모든 질병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환자들이 다 모여 왔다. 특히 방랑 및 무연고자 환자들을 위한 외국 수녀님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찬 실천으로 근처 여관방을 이용하여 환자 간호와 숙식을 제공하는 등 호스피스 간호를 실시하였다.
1978. 8.10
점차로 의원이 안정되어 감에 따라 본당 신자들과 함께 의원 주변의 가정 방문 진료 및 간호를 출발점으로 의원내 '요셉의 집'에 임종자들을 위한 방 2개를 마련하여 무연고 환자나 가정에서 임종할 수 없는 여건의 어려운 환자들의 간호 및 임종을 지키면서 적극적인 호스피스 활동을 실시하였다.
1981. 1.21
임종자들을 위한 말기 간호와 무연고자들을 위한 단기간 입원 치료를 위해 의원 2층에 2인용 병실 7개, 14병상을 마련하여 24시간 지속적인 호스피스 입원실 운영하면서 정기적인 가정 방문 간호(방문 간호사, 사목수녀, 운전기사, 자원봉사자 )를 실시하였다.
1990. 1.19
가정 방문 호스피스에 주력하여 강릉 시내 및 명주군을 거점으로 방문 호스피스를 활성화 시키면서 무료환자들의 장기 입원화 및 재정적 어려움으로 2층 호스피스 입원실을 정리하였다.
1995. 6. 9
강릉 지역 내 호스피스 교육후 갈바리 의원( 호스피스)를 위한 후원회가 조직되고 의원내 2층 병실을 새로이 단장하여 후원자, 자원봉사자, 원목자, 의료팀들이 하나가 되어 임종자들과 함께 하는 사랑에 찬 동반자의 터을 마련하여 입원실 운영 및 가정 방문을 통해 호스피스 활동에 주력하였다.
1999.
입원실 운영, 가정 방문, 외래 진료, 타병원 원목 활동과 함께 임종자들의 위한 영적 구원을 위한 기도회, 심리 및 원목의 전화 상담등을 주관하면서 외로이 죽어 가는 이가 없도록 내일이면 너무 늦을, 오늘 임종하는 사람들을 위해 전인적인 간호를 실시하였다.
1999. 6 .19
'갈바리 재가 노인 복지 센터 ' 설치 인가(가정 봉사원 파견 사업)
2003. 3. 3
'갈바리 가정 봉사원 파견 센터'로 명칭 변경
2000. 3. 15
35주년 기념행사. 갈바리의원을 중심으로 한국호스피스 방향 심포지엄 개최
2002. 11. 8
갈바리의원 전면 재건축
입원실 14병상, 가정방문팀, 외래진료, 프로그램실, 가족휴게실, 실내정원, 기도실
2005. 3.15
“40주년 기념” 미사와 축하식, 작은 음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