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 죽음에 대한 명상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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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죽음에 대한 명상 中에서

봄이야기 0 4,093 2009.04.03 19:01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살자는 말은 '현재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입니다. 어쩌다 새로 개발되는 도시를 둘러보면, 오로지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삶의 쾌락만을 부추기는 감각적 상혼이 판을 치는 것을 봅니다. 또한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이 땅별의 마지막 세대라도 되는 양 단 하나뿐인 땅별의 온갖 생명 시스템을 먹어 치우고 독살하고 파괴하는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 있습니다.
장자 같은 성인이 말하는 '현재의 삶'은 찰나의 쾌락을 즐기자는 것으로 오해하거나 미래의 생명체와 무관한 듯이 그렇게 무책임하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삶은 우리의 후손들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차용증서에 서명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어느 유치원의 선생님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며칠 동안 유치원을 결석한 아이가 나왔길래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할머니를 땅에 심고 왔어요." 하고 대답하더랍니다. 비록 어린아기가 불쑥 뱉어 낸 말이긴 하지만, 퍽 의미심장한 느낌을 불러일으키지 않습니다. 천진무구한 아이는 땅에 묻히는 할머니를 다시 소생할 '씨앗'처럼 여긴 것이지요. 우리 어른들도 죽음을, 새로운 삶을 위해 씨앗을 뿌리는 행위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죽음을 앞에 두고 '너희가 있을 곳을 예비하러 간다'던 예수님의 말이 아니더라도, 개체의 상실로서의 우리 몸의 죽음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죽음은 불가피한 변화입니다. 어느 성인군자도 이 불가피한 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그 변화를 통째로 받아 들였다는 뜻이며, 그것으로 그들은 자유를 얻었습니다. 홀연 이런 자각이 일어나면 헨리 뉴엔의 말처럼 죽음은 우리에게 '큰 선물'이 될 수 도 있습니다. 봄의 정원에 핀 화사한 꽃들이 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떨어지지만 꽃의 죽음은 꽃나무에게 열매라는 큰 선물을 안겨줍니다.
봄날이 눈물겹도록 아름다운건 뚝뚝 지는 꽃잎들 때문이 아닐런지요.
                                                        
                                            - 꽃들의 죽음에 대한 명상 中에서 -  고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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