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후에 남겨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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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후에 남겨진 것들

봄비 0 7,996 2009.03.13 18:55

 

S#1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저번주 일요일 오후 늦게 씨네코드 선재에 갔습니다. 아트 선재센터가 독립영화 극장으로 변신을 했지요. 그곳에서 상영되는 독일영화 '사랑후에 남겨진 것들'을 봤습니다.


개인적으로 도리스 되리 감독을 좋아합니다. 예전 '파니핑크' 란영화를 통해, 사랑의 조건을 넘어서는 우정의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내 남자의 유통기한』에서는 사랑의 영속성과 과제에 대해 진중한 물음을 던졌던 그녀. 도리스 되리.


 


이번엔 마지막 그녀의 사랑 3부작에서 우리가 사랑이라 일컫는 행위, 그 마지막에 남겨진 것들이 무엇인지 물어봄으로써, 죽음의 순간, 무엇을 가슴에 안고 가야 하는지 확인시킵니다. 사랑을 확인하고 확인받고 싶어하는 인간이지만, 우리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며 그 욕망을 끝까지 차연시키기 쉽지요.


 


갑작스런 죽음으로 사랑하는 이를 잃고 상실감에 빠진 인간이 할수 있는 반응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이별은 단순한 망자화의 헤어짐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있는 자들에게 선물일 수 있다는 것. 그 선물의 포장을 풀어 느껴볼 시간은 화려한 벚꽃의 개화와 짊처럼 짧다는 걸,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영화 초반, 일본 에도 시대의 화가 호쿠사이가 그린 후지산의 100가지 풍경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배우들의 크레딧이 지나갑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노년의 부부입니다. 남편 루디는 매일 7시 28분이면 하일하임행 기차를 타고 출근합니다. 한손엔 아내가 싸준 도시락과 한개의 붉은 사과를 들고서요.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남편 루디의 암선고를 듣게 된 아내 트루디. 그녀는 사실을 숨긴 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둘의 여행을 준비합니다. 베를린에 살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러 가지만, 아버지와의 관계가 원만치 않았던 탓인지, 쌓인 마음의 앙금은 냉대와 무관심으로 표출되고, 상처만 가득 안고 발틱의 푸른 바다로 둘 만의 여행을 떠나지요. 발트해의 푸른 하늘과 아쿠아마린 빛 바다, 갈색 갑곶에 선 노년의 부부. 남편을 위해 자신의 코발트 블루빛 환한 니트를 반쯤 벗어 남편을 덮습니다. 남편을 위해 준비한 여행에서 그녀는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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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연자실한 루디는 막내 아들 칼을 만나러 무작정 도쿄로 갑니다. 엄마가 가장 아꼈던 아들, 칼은 그곳에서 회계사로 바쁘게 살아가지요. 엄마의 부재속에 아버지에게라도 잘해야 할텐데, 아들은 한없는 무관심속에 아버지를 동경의 한 바닥에 남겨두고 맙니다. 그러던 어느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공원에서 부토춤을 추는 '유'라는 여인을 만납니다. 여인의 몸은 자신의 그림자를 껴안는 춤을 통해 선연하게 사쿠라꽃 핀 공원의 풍광과 대비됩니다. 핑크빛 전화선이 얼기설기 엮여진 나무 그루터기, 전화기를 들고 여인은 끊임없이 죽은 엄마와 소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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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일본문화를 정신적 지주로 삼은 독일 감독의 시선에 비친, 동양적 죽음에 대한 해석입니다. 그만큼 부토란 특유의 일본현대무용의 코드가 영화를 해석하는데 주요한 단서가 된다는 뜻입니다. 역사적으로 따져 묻자면 일본의 부토댄스는 독일의 표현주의와 연결된 춤입니다. 전후 일본인들은 패전 후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기 위한 몸부림의 일환으로, 이 부토댄스를 탄생시켰죠. 연극과 춤의 중간지점에 서 있는 부토댄스. 전후 자신의 내면 속 어두운 그림자를 ?아 화해하기 위한 몸의 언어로서, 이 부토는 50년대 말-60년대 초 일본을 강타합니다. 무의식의 영역을 표현하는 그림자를 ?는 춤. 자신과 그림자와의 대화를 몸으로 담아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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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디는 아내와 사별한 후, 상실감을 견디지 못한 채, 살아있는 동안 그녀에게 해주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떠올립니다. 현모양처였던 아내는 예전 부토댄스를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가고 싶어했던 여인이었죠. 결혼과 더불어 그 꿈을 저버린 그녀였습니다. 이제 죽은 아내를 위해 그는 아내의 옷을 입고 공원을 돌아다니며 환하게 핀 벚꽃을 구경시키고 그녀가 생전에 보고 싶어했던 후지산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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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아침마다 만들어주었던 양배추롤을 요리해 부토 댄서에게 주는 루디. 양배추롤처럼, 매일 매일 일상의 무게 속 자신을 안아주고 평화로운 미소로 돌돌 말아준 아내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저는 참 와닿더군요. 유와 루디는 후지산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안개가 끼어 정상이 맑게 보이는 날을 찾기 어려운 그곳에서, 아내가 부엌에서 어김없이 입었던 고운 유카타를 자신이 입고, 함께 부토를 춥니다. 루디 안에 있는 망자의 혼, 아내는 자신과 하나가 되어 호쿠사이의 그림 속 후지산의 영성이 잔영으로 비치는 호수 앞에서 춤을 춥니다. 영혼의 춤은 아름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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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덧없음의 상징인 벚꽃의 분홍빛 속살은 후지산 자락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으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사랑의 순간은 꽃의 운명처럼 명멸의 시간을 갖습니다. 사랑 후에 내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를 위해 그가 보여주었던 작은 배려와 포기했던 꿈의 무게, 그 값은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갖는 다는 것. 사랑후에 남는 것은 함께한 시간만큼 그리운 이에 대한 고마움입니다. 그 고마움을 죽음 전에 깨닫는다면 이 세상의 모든 커플들은 행복하겠죠. 그냥 그런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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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랑후에 남겨진 것들』은 일본의 부토댄스를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우울한 그림자의 실체를 바라보게 합니다. 유한한 생의 리듬을 받아들이고 인간의 조건에 대한 질문을 몸을 통해 던져보라고 말하는 영화. 영화 속 부토댄스가 이렇게 눈에 들어오기는 처음입니다. 안무가 안도 타다시의 연출로 동세 하나하나에 담긴 그리움의 깊이를 느껴봅니다. 보다가 눈물이 주르르 흐르더군요. 사랑이 명멸하는 꽃의 운명이 아닌, 후지산의 영원함을 갖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자신에게 물어야 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중년의 아버지들이 많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속 루디의 모습 속엔 자녀들에게 따스한 말을 던지기 어렵고 그렇게 훈련받지 못한 우리 아버지 세대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어요. 살아가면서 중요한 가치, 자녀들과 함께 공유해야 할 것들이 무엇일지, 다시 한번 우리의 정체성을 묻게 하는 영화였답니다. 영화 속 대사가 떠오릅니다. "누구에게나 그림자는 있다. 살아있으나 동시에 죽어있는 것, 그것이 그림자다" 우리는 자신의 그림자를 껴안고 화해하는 춤을 출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이 모든 관계맺는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기에 말이죠. 사랑하는 아내는 더욱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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