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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내리는 10월의 어느 아침, 삶의 끝자락에서 피어난 음악이 조용히 병실을 물들였다.
22일 오전 11시,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피아니스트 선우 예권은 ‘갈바리의 선물’이 되어 하슬라국제예술제 특별 공연장인 갈바리 실내정원을 찾았다. 화려한 조명도, 별도의 무대도 없었지만 그가 전하는 피아노 선율은 어떤 공연보다 따뜻하고 깊게 스며들었다. 특히 이번 연주는, 40여 년 된 오래된 피아노를 대신해 새롭게 선물받은 피아노로 선보이는 첫 공연이었다. 새 피아노의 첫 연주가 선우 예권이라니, 이 피아노는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 녀석인지 알고 있을까? ^^
첫 곡은 슈베르트의 ‘즉흥곡 D.899’. 맑고 서정적인 선율이 흐르자 병동의 분위기는 한층 살아났다. 창가에 맺힌 빗방울도 깊은 운치를 더했다. 이어 연주된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 서곡 주제에 의한 〈빈의 저녁〉’에서는 자연스레 미소가 퍼졌다. 살랑거리는 리듬이 공간을 가볍게 흔들며 모두의 마음을 조금씩 밝게 비춰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환우분들뿐 아니라 모든 관객의 마음 속 시름과 아픔이 잠시나마 사라졌을 것이다.
이어 쇼팽의 「프렐류드」 24곡 중 일부가 연주되었다. 선우 예권은 건반 하나하나에 삶의 아름다움과 회한을 담아 환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의 진심은 고스란히 소리에 배어 나왔다. 숨죽이며 귀 기울이던 관객들은 연주가 끝나자 뜨겁게 “앙코르!”를 외쳤다. 그 외침은 단순한 요청을 넘어, 생명과 죽음의 경계 어딘가에 잠들어 있던 우리의 축배였는지도 모른다.
앙코르 무대에서 선우 예권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Träumerei)」, 이어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연주했다. 꿈결 같은 슈만의 선율은 깊은 위로가 되었고, 불꽃처럼 타오르는 리스트의 연주는 생의 찬가가 되어 실내정원을 가득 채웠다. 아름다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던 그 순간, 심장이 터질 듯한 벅참을 느꼈다.
예술이 누군가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순간, 그것이 진짜 선물이라는 조재혁 예술감독의 말처럼, 갈바리는 이날 피아니스트 선우 예권에게 잊지 못할 진짜 선물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 갈바리 역시 그에게 그런 선물이 되었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
깊은 가을..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하루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