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신경내분비암 진단을 받은 여자 환자 댁으로 가정 방문을 다녀왔다.
그녀는 온몸에 암세포가 점조직처럼 퍼져 힘든 상태였다.
오늘이 내 생애 가장 건강하고 좋은 날일 것 같아 청량리에 꼼장어를 먹으러 다녀온 그녀가
많이 힘들어 했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을 한아름 안고 초인종을 눌렀다.
그녀는 옅은 화장기에 수선화 같은 미소를 머금으며 우리를 맞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의 얼굴이 말하고 있었다.
서울에 다녀온 날 밤, 간호 수녀님이 응급으로 그녀의 집에 다녀갔고 그 이후로 많이 회복된 듯했다.
하얀 테이블에 위에 놓여 있던 알록달록 마카롱과 탐스럽고 싱그러운 딸기, 그리고 방 안을 가득 채운 커피 향에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우리는 하얀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화롯불 앞에서 할머니의 맛깔진 옛날 이야기를 주워 먹듯
그녀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화려했던 이십 대의 추억, 꼼장어 여행, 친구들의 살가운 배려 등등..
많은 이야기들과 호탕한 웃음소리는 작은 공간을 꽉 채워 우리 마음속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언젠가 여행 후에 탈이 나서 녹두죽을 시켰는데 녹두죽만 시키기 싫어서 떡볶이도 함께 배달시킨 적이 있었어요.
녹두죽은 너무 맛이 없었고, 떡볶이를 삼일 동안 나눠 먹었어요.
생각지도 못한 떡볶이의 등장에 우리는 모두 웃었지만...
녹두죽과 떡볶이. 초록과 빨강. 생명과 욕망.
욕망하는 인간의 간절함이 묻어, 나는 이 삼 음절에 마음이 아려 왔다.
생명과 욕망, 두 가지는 서로 충돌하지 않으며, 오히려 욕망은 고통을 이겨내며 살아갈 이유를,
생명은 욕망을 넘어서 그 이상의 의미를 찾게 한다.
어쩌면 이 모든 욕망은 삶을 조금 더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만드는 원천이 아닐까.
간절한 욕망 속에서 우리는 모두 조금씩 생명의 본질에 다가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욕망에서 건강하고 생명을 주는 욕망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다 보면
우리의 깊은 심연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바람을 가져 본다.